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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TI

MBTI로 본 우리나라 대기업 CEO

by 정보 채널 2021. 2.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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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접시험에 오다가 아파 쓰러진 할머니를 보게 됐습니다. 당신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지난 8월 신입사원을 모집한 한 종합상사의 1차 면접 질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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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 모집에 2천명이 몰린 이 회사의 서류전형을 통과한 80명의 인재는 이 같은 질문에 당황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물론 정답은 없습니다. 이 회사 관계자는 "지원자의 인성을 어떻게든 판단해 보고 싶은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주요 기업들은 기업이 바라는 인재상으로 개인 역량, 국제 감각, 원만한 대인관계, 올바른 가치관 등을 주요 요건으로 제시했습니다.

한국의 대기업들은 인재 채용에서 서류전형, 인성 및 적성검사, 면접을 중시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각 기업이 영어는 기본이고,...각 기업에서는 기업의 성격에 맞게 다양한 적성검사 방법으로 자기기업에 맞는 인재를 채용하는 추세입니다.

특히 LG전자의 경우 기업채용에 있어 온라인 MBTI검사가 포함되어 있는 것을 보니, 기업의 인재채용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지만 이전에 읽었던 기업과 MBTI관련 글 하나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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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격분석서 저자 임승환 소장이 본 '그들의 카리스마' >

한국 근대화의 첨병이었던 재벌 창업세대는 사업을 통한 업적 이외에도 개인의 캐릭터 그 자체가 국민들에게 강한 메시지로 다가온 게 사실이다. 1세 회장들의 행동거지와 그들의 스타일은 늘 언론의 관심 대상이었고 그만큼 이 들의 일거수 일투족이 우리 사회의 가치관에 미친 영향도 지대하다. 현대 정 주영 명예회장의 별세로 사실상 재벌 창업세대가 종언을 고한 지금 이들의 인간적인 면모와 성격이 우리사회에 남긴 흔적은 깊고도 넓다.

전문 기업컨설팅업체 T&C 임승환 소장(43) 1998년 국내 최초로 이들 재벌 1세들의 성격 분석서인 
5대그룹 총수의 성격분석 보고서(중앙M&B ) 를 냈다. 서울대 심리학과 대학원에서 상담심리학을 전공한 뒤 10여년간 기업 컨설팅에 종사해 온 그는 언론매체의 광범위한 기록과 회장 주변인물들의 전 언,기업컨설팅을 하며 축적한 자료들을 토대로 과학적 방법을 동원, 재벌1세 들의 성격분석을 시도했었다.

그는 
기업문화의 가장 결정적 요인은 최고경 영자의 성격적 특성이라며 이들의 카리스마적인 캐릭터는 해당 기업을 넘어 당대의 모든 사람들에게 한편으론 꿈과 용기를, 다른 한편으론 좌절과 실망을 안겨줬다고 말했다.

임 소장이 분석한 재벌 창업주들의 성격과 우리 사회에 미친 영향을 정리했다.

■‘로맨틱한 드리머 정주영(ENFP)

시골출신으로 맨주먹 신화를 일군 인물이다.신분상 유리한 점 없이 열정과 꿈을 갖고 거대 사업의 윤곽을 잡아나가는 연상력이 뛰어난 사람이었다. 비유를 들자면 달걀을 보면서 양계장 그림 을 그리는 그런 스타일이다. 흔히 정주영 하면 강한 추진력을 얘기하지만 심 성 측면에선 강인한 사람이 아니다. 표현컨대 휴머니스트 기질이 다분했다. 부하 직원들과 어울리기 좋아하는 것도 그렇고 그의 주변에 여자얘기가 심심치 않게 나오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 풀이할 수 있다.

그의 열정에는 기발한 아이디어와 직관력이 가미됐다. 예컨대 500원짜리 지폐에 들어있는 거북선 그림을 갖고 외국에서 선박수주를 따낸 일화나 소 떼 방북의 드라마는 그 좋은 예다. 이런 일은 계산을 좋아하는 사람에게선 기대 할 수 없는 것이다. 계산적이지 못한 다소 거친 리더십에도 불구, 말로 하는 설득력과 휴머니스트적인 스타일이 그런 약점을 채우고도 남았다.

정 전 명예회장의 허황돼 보이는 스타일은 선진국에선 이벤트 사업가가 가 질 그런 성격이다. 그러나 그가 살았던 시대, 즉 산업화 초기의 후진 한국사회 에선 실속없는 사람으로 주변의 손가락질을 받을만한 인간형이다. 그럼에도 그는 현실에서 자신의 꿈을 증명했고 사람들은 그런 그에게 꼼짝없이 승복해 야 했다.

그는 어느 재벌창업주보다 뭇 사람들에게 꿈을 안겨준 인물이다. 특히 가지 지 못한 이들에게 꿈과 용기를 줬다. 그러나 그의 스타일은 산업화 초기에는 먹히는 것이었다. 그러나 사회가 분화되고 변수들이 늘어난 복잡한 현대사회로 들어서면서 그의 무모하리 만큼 일 벌이기를 좋아하는 성품이 오히려 부작용을 낳았다. 치밀함 없이 밀어붙이는 스타일은 시대변화에 빠르게 적응하지 못하는 걸림돌이 됐다.

■‘철저한 상인 이병철 (ISTJ)

출신성분의 차이만큼이나 캐릭터도 정주영 전 명예회장과 대조적이다. 천석꾼 지방토호의 자제로 생전에 벌이는 사업마다 모두 성공을 일궜다. 실패없는 삶의 전형이었다. 이는 그가 얼마나 치밀하고 계산적이며 안정지향적인지 웅변해준다.

그는 고리대금업자와 맞먹는 계산중심의 인물로 평가된다. 돌다리도 두드려 가는 체질이다.이는 우리 사회 중산층의 전형적 성향이다. 소비재를 중심으로 안정위주의 사업을 편 사실이 이를 대변한다. 부화뇌동이나 근거없는 열정 만으론 아무 것도 성취할 수 없고 냉정한 현실인식이 성공을 보장한다는 것 을 세인들에게 보여줬다. 핵심사업을 3남인 이건희 회장에게 물려주면서도 다른 자식들에게 사업을 쪼개 생전에 불협화음을 차단한 일 또한 그의 치밀함 이 돋보이는 대목이다. 덕택에 이 건희회장은 반석위에서 사업을 이어받을 수 있었다.

관리의 삼성이라는 전통은 그가 조직관리에 얼마나 치밀했는지를 잘 보여준다. 직원 복지와 교육 등에 남달리 신경을 쓰면서도 노조 만큼은 절대 로 용인하지 않은 데서 그의 조직관리 스타일을 극명하게 읽을 수 있다. 가정 에 비유하면 그는 자부(慈父)보다는 사려깊은 엄부(嚴父)형이라고 하겠다. 그러나 관리가 지나쳐 시스템이 경직되는 문제점도 낳았다. 인간적인 면이 부족하다는 기업이미지도 이와 무관치 않다. 이건희 회장이 93년 신경영을 추진할 때 인간미, 도덕성, 에티켓을 강조하며, 이런 덕목을 삼성의 헌법으로 만 든 것도 아버지대의 부정적 유산을 해소하려는 노력으로 보인다.

■‘머리와 깡의 결합 김우중 (ESTJ)

김우중 전 대우 회장은 속되게 표현하면 깡패 기질이 다분했다. 그러나 높은 지능 덕택에 이런 기운을 사업으로 건강하게 승화시킨 경우다. 아버지는 문교부 고위관료를, 어머니는 대한부인회 부회장을 지낸 선각자 집안 출신이었다. 그러나 6·25때 아버지의 납북으로 성장기를 어렵게 보냈다.

그는 실제로 경기고 시절 깡패노릇을 한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동창들이 그를 보면 깡패라고 부른다고 부인 정희자 여사가 전할 정도다. 김 전 회장의 베스트 셀러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에서 젊은이들은 깡패하나쯤 쓰러뜨릴 수 있는 배짱이 있어야 한다는 기개에 찬 말도 그런 그의 기질이 잘 담겨 있다.

그는 사냥본능이 강한 사람이다. 그는 제조업으로 승부를 본 사업가가 아니 다.무역회사로 출발한 것에서 보듯 그는 만들기보다 파는 일로 승부를 걸었다. 승부욕과 스피드에 대한 강한 집착은 동구권 진출을 통한 급속한 양적 성장을 추구했던 경영스타일에서도 읽을 수 있다.

이런 그의 삶의 태도는 우리 사회에서 강한 기질 때문에 지탄을 받는 이들 에게 대리만족의 모델이 됐다. 야망과 도전의식이 충만한 젊은이들에게 적지 않은 영향을 끼쳤다.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가 젊은이들에게 인기를 모은 사실에서 이런 사정이 잘 나타난다.

그러나 그로 인한 정서적인 부작용도 적지 않은 게 사실이다. 우선 목적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은 그의 기질이다. 승부에 너무 집착한 나머지 인재양성 등 질에 대한 고려가 미흡했다. 김 전회장은 타고난 보스기질을 타고났다. 어려운 환경에 맞추기보다 환경 자체를 스스로 주도해 가는 스타일 은 정주영 전 명예회장과 비교되곤 한다. 그러나 비정한 일면이 보인다는 점에서 정 전 명예회장과 다른 점이다.

■‘도인(道人)풍 학자 최종현 (INTJ)

10년 앞을 소리없이 준비하는 붕조(鵬鳥) -최종현 SK 전 회장는 한마디로 이렇게 표현할 수 있다.

멀리 내다보는 직관력과 생각의 힘을 중시하는 학자풍 경영자였다. 치밀함 에선 이병철 전 회장과 비슷하지만 직관력을 많이 활용했다는 점에서 다르다 . SK의 사시를 보면 
패기라는 단어가 있다. 여기서 패기는 흔히 떠올리는 저돌적인 도전의식이 아니다. 일의 성취를 위해 각종 변수들을 끊임없이 해체하고 다시 조립하는 생각의 힘이다. 최 전 회장 당대에 남달리 기술개발 에 주력했던 것도 이런 그의 스타일 때문이다. 당시 선진국에서 기술이전을 거부했던 폴리에스테르를 독자 개발한 것이 그 예다. 정신의 힘에 대한 그의 관심은 스스로 단전호흡에 심취했고 기업 교과목에 정신수양을 넣은 데서도 드러난다.

그의 원대한 안목과 요란하진 않지만 치밀한 추진력은 8년의 공을 들여 대 한석유공사를 취한 과정에서 잘 드러난다. 미리 주식을 사들이고 사우디 등 산유국 유력인사들과 교분을 쌓는 등의 노력을 소리 안나게 했다.1차 석유파 동 때 우리나라가 이스라엘에 협력한다는 이유로 중동산유국들로부터 석유 금수국가로 분류돼 어려움을 겪을 때 최 전 회장이 이들 나라 왕자들과의 교분을 활용, 석유를 들여오기도 했었다. 이 일도 유공 인수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최 전회장은 연구와 공부,토론을 좋아했다. 부하에게 일을 위임하고 시스템으로 관리하는 시스템 중시 경영을 보여줬다. SK의 경영헌법이나 다름없는 SK MS(SK Management System)는 이런 그의 경영철학을 집약적으로 보여준다. 또 캔 미팅(사적인 자리를 통해 회사경영에 대한 소신을 피력하는 회의 방법)이나 SUPEX(Super Excellent·초일류 수준을 의미) 등 신조어를 직접 만들어 엄밀하게 개념화하고 경영실전에 접목하는 것도 그의 학구적 성격과 맥이 통 한다.

한편으론 은자(隱者)와 같은 폐쇄성도 엿보인다. 최 전회장은 워커힐 호텔 부근에서 평생 전세로 살았다. 사진찍기를 싫어했고 대중들에게 자신의 성격이나 내면세계를 알리는 일에 인색했다. 이런 그의 성향은 기업문화에도 적지 않게 반영됐다. SK의 전신인 선경은 보수적이면서도 시달림이 덜한 회사로 80 년대 젊은이들, 특히 내향적인 성격의 젊은이들에게 선망의 대상이었다. 그러나 이 때문에 자기들끼리만 잘먹고 잘산다는 부정적인 기업 이미지를 낳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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